작성일 : 12-07-16 14:15
그런 하루, 그런 꿈 (7.7~7.8)
 글쓴이 : 박진영
조회 : 6,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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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여름의 시작, 10주간의 힘겨웠지만 행복했던 글쓰기 수업이 끝났을 때 우리는 '글'로 맺어진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핑계로라도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보고 싶어 했죠.  글쓰기 반의 자랑인 선미 선생님이 선암사 사진을 몇 번 보여 주셨는데 모두들 가고 싶어 했어요.
선암사로 엠티 간다는 얘길 처음 들었을 때 날 찾아온 건 반가움 보다 두려움이 먼저였어요.
2005년인가... 월정사로 한달짜리 출가학교에 참여했다가 내 오랜 친구이자 적(敵)인 신경성 피부염이 심해져 고생했었거든요.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임에도 엄격한 규율과 불편한 의문에 혼란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후론 문화재로서의 절이라 해도 근처에도 가지 않았어요.
글쓰기 동무와 버스를 타고 떠들다 졸다를 반복하며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아련한 여행을 거의 놓칠 뻔 했지요.
그렇지만 1박2일의 짧은 외출로 인해 그 전 2주 동안 내내 마음이 부산스러운 나를 발견하곤 겸연쩍어졌습니다. 저만 그러진 않았겠지요.
하여간에 저는 올해 운이 억세게 좋은 인간입니당. 히히
 
아침 8시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만 지각을 했죠.  몇 분 안 늦었는데 저만 지각한 걸 보니... 모두들 그토록 설레고 여행이 고팠었던 거군요^^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예쁘게 눈 흘기며 ‘왜 늦었어?’ 하던 어여쁘게 상기된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내 마음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던 것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의자 위로 전달되는 주전부리들... 우리는 신나게 떠들고 먹고 졸기 시작했지요. 아, 누가 여고생의 마음에 불을 지폈을까요.
교복만 입혀 놓으면 영락없는 열일곱살 소년 소녀들. 눈가에 주름은 좀 잡혔지만 말똥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까르르 웃는다는 여고생처럼 우리는 뭐가 그렇게 신나고 재밌었는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절대 바닥을 보이지 않는 수다꺼리,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웃음소리.
선암사에 도착하자 교복 대신 던져진 건 행자복이었죠. 베스트 드레서는 사비와 별똥별? 버스에서 멀미 때문에 고생했던 사비는 절에 가까워지면서 절대안정을 되찾았다는 ㅋㅋ 진정한 여행자의 면모를 보여주었죠.
기대 그 이상이었던 선암사.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문(門), 나무, 돌멩이, 그리고 향기. 저 멀리 바라보면 언제나 그 자리엔 안개 자욱한 푸른 산봉우리.  몇 해 전 월정사에서 가장 무서워했던 건 엄청나게 큰 불상이었어요. 볼 때마다 바보처럼 오들오들 몸을 떨었죠. 큰 뜻을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작고 너는 너무 큰 것 같아서.
그런데 선암사는 절이라기보다 작은 마을 같았어요. 삐거덕 나무문 열리는 소리, 흙길을 밟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대청마루에 누워 낮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느릿느릿 지나가는 야옹이가 깨우기도 하겠죠. 일어나 개울에 참외 동동 띄어 놓고 한 입 베어 물고 싶은 오후였죠. 지나가는 사람 불러 앉혀 실실 농담 같은 진심을 전하고 싶은.
다음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아침공양하고 대부분은 다시 꿈나라로 갔죠. (그럼요. 떠드는 거 다음으로 중요한 건 먹는 거요, 다음은 자는 거죠 ㅋㅋ) 은유, 배우는 녀자, 별똥별, 희정, 세실 그리고 나는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 수사에 착수했고 ㅋㅋ 돌아온 코난, 배우는 녀자... 역시 ‘범인은 이 안에 있어.’ (히히히 재밌다)
자물쇠 사건이 해결되자마자 긴박하게 터지는 숟가락 사건. 분명히 숟가락으로 뒷문을 잠궜다는 세실님. 그러나 방문을 열어보니 숟가락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흠, 알고 보니 옆 방이었답니다 ㅡㅡ:: 귀여운 세실씨^^ 어쩜 좋아.)
하도 일찍 일어났더니 아무리 설치고 돌아다녀도 시간은 아직 오전 9시. 노을님이 새로 사 오신 풍뎅이랑 사비가 준비한 원두를 챙겨들고 편백나무 숲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선 시인 이성복 오빠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영원한 소녀 은유님이 손수 모셔 오셨죠.
커피 내음과 함께 시를 읽었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한 명씩 나누어 읽었죠. 시 읊는 소리가 높아질수록 우리들 눈은 맑아지고 바람소리는 부드럽게 내려앉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귀 기울였겠죠. 편백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에도 소중히 깃들었기를.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 내가 힘들게 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그래서 이해 보다 오해가 앞섰던 수많은 너와 나에게 전달되었기를.
내 마음 열고 싶고 그대 마음에 귀 기울이고 싶은 그런 하루가 꿈 같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저녁 공양을 마치고 북소리를 따라 걸었던 길. 뉘엿뉘엿 지는 해를 등지고 북을 치던 스님, 그 모습을 풍경처럼 바라봤던 내 마음은 왜 그리도 외롭고 따뜻했을까요. 편백나무 숲은 언젠가 걸었던 길처럼, 혹은 언젠가 걸을 것 같은 길처럼 포근하고 촉촉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걷는 우리들 뒷모습도 참으로 정겨웠어요.
‘절에선 떠드는 거 아닙니다.’ 영락없는 여고생들. 조용히 해란 말을 듣고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또 떠들었죠. 조용하고 평화로운 선암사 마을을 그토록 휘젓고 다니며 소란을 피었으니 스님과 선미님께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하지만 키 큰 편백나무가 아직 내 마음 속에서 떠날 줄 모르는 걸 보니 그 녀석은 우리의 재잘거림이 싫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요렇게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또 보러 가고 싶네요. 많이 보고 싶습니다. 정다운 얼굴 위로 겹쳐지는 또 다른 친구들이.
 
(덧)
선미님, 선미님의 소중하고 특별한 인연... 우리에게도 허락해주어 고마워요. 철 없이 떠들어 스님들과 다른 행자님들께 방해가 되었을 테데 모두에게 죄송해요. 하고픈 말이 자꾸 떠올라서, 길가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만 봐도  친구 옆구리 쿡쿡 찔러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에 어린애같이 그랬나봐요... 다음엔 절대 안 떠들게요.
노을님, 역시 그대는 천사였던가요ㅜㅜ 어미새처럼 우리들 입 속에 먹을 거 쏙쏙 넣어주는^^ 내 몸 하나 챙긴다고 늘 분주했던 자신이 부끄럽네요. 조금씩이라도 노을님 배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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