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7-19 14:26
글쓰기 공부 템플스테이트 후기 (7.7~7.8)
 글쓴이 : 김상협
조회 : 7,914  
# 내일 여행 간다. 히힛
내일 선암사로 여행을 간다. 기분이 들떠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마냥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선암사 주변 계곡사진 몇 장은 그런 내 마음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초록의 이끼로 뒤 덮인 울퉁불퉁한 바위 사이로 바닥 자갈을 비추는 투명한 물이 흐른다. 물과 바위가 만나 맥주의 거품마냥 하얀 포말을 만들고 하늘을 향해 뻗은 나무들은 자신의 키를 자랑하듯 뜨거운 햇빛을 초록 그늘로 바꾸어주었다. 바위에 앉아 발을 담근 사람들의 얼굴에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웃음꽃이 피어났다. 나도 모르게 같이 웃으며 새벽을 알리는 아침 새의 짹짹 임을 기다린다.
 
# 선암사로 가는 길.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 하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여행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등산복 차림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중년의 남성들이 배가 빵빵하게 나온 등산용 가방을 짊어진 체 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처자들이 다리가 드러나는 핫팬츠와 속이 비추는 하얀 반팔티를 입고, 도착지에서 그들을 맞이할 백사장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을 관찰 하다 보니 일행들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유럽의 어느 야외 카페거리를 걸을 법한 복장을 한 은유쌤은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움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멀리서 청색의 핫팬츠와 반팔티를 입고 작은 가방을 둘러맨 은재누나가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터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준범쌤은 구릿빛으로 변한 피부와 이야기보따리를 선물로 가져왔다. 선암사에서 들려준다는 말에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버스 출발 10분전에 남자친구의 손을 꼭 붙잡고 도착한 진영누나를 바라보며 솔로들은 부러움의 눈빛을 보냈다. 특히 은유쌤이 자신도 남편이 대려다주었다는 말에 솔로 3년 차인 나는 부러움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혼미해진 정신을 다독이다 보니 어느덧 버스 안 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몰려왔다. 맨 뒷자리에 앉아 여고생처럼 재잘거리는 누님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싶었지만 덜컹거리는 버스의 진동과 우등고속의 넓고 푹신한 좌석은 나를 잠으로 끌어들였다. 순천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는 기사아저씨의 목소리로 잠에서 깨어난다.
 
순천 버스 터미널에서 1번 버스를 타고 선암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뱀의 허리마냥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가 지날 때 마다 좌우로 몸이 쏠렸다. 우스갯소리로 자연스러운 접촉을 원하는 연인이라면 반드시 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계단식 논에는 초록의 벼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흩날리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 마냥 이리저리 흔들리며 물결을 만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태양과 구름이 산을 도화지 삼아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초록의 산허리에는 여러 종류의 그림자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그림자는 새로 변해 날개를 흔들며 여행을 축복해주었다. 그와 동시에 들리던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를 잊지 못한다. “짹-짹 짹-짹 짹짹 째제잭.” 새가 만약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있었다면 분명 여행과 행복에 관한 노래를 했으리라 확신한다.
 
어느덧 버스는 선암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주차장과 선암사를 이어주는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다. 때마침 머리 위로 다가온 먹구름이 한 두 방울 가랑비를 내려주기 시작했다. 안경에 맺힌 물방울 사이로 보이던 산책로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의 표현능력이 부족하여 당시의 풍경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사진이라도 한 장 있었더라면 하는 기분이다.
 
# 선암사의 밥은 맛있다.
선암사의 밥은 인공 조미료 하나 들어가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맛있었다. 각종 조미료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소금으로만 간을 맞춘 콩나물 무침이 참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 콩나물 무침보다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콩나물의 오동통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잘 삶아져 있었고 입안에 들어와 ‘아싹’하고 십히며 느껴지는 콩나물의 탄력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해준 콩나물을 생각나게 했다. 콩나물 외에도 다른 수많은 반찬들 모두 각각의 맛을 가지고 있었다. 고추 간장절임에서는 알싸함과 청량함이 동시에 느껴졌고 고추와 파를 다져 넣은 간장양념장에 갓 구운두부를 찍어 먹었을 때에는 그저 미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고추장이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이자면 사람 고-추장이 아닌 밥에 비벼먹는 빨-간 고추장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에 새빨간 고추장을 비빈다음 한 입 먹었을 때 나는 말없이 숟가락을 놀렸다. 밥을 다 먹은 뒤 염치 불구하고 줄을 서 밥과 고추장을 한 번 더 받았다. 재료가 무엇일까, 어떻게 숙성시켰을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추장답게 자극적이었지만 다른 수많은 고추장과는 달랐다. 다른 고추장이 혀를 창으로 찌르는 느낌이었다면 선암사에서 먹은 고추장은 혀를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고추장만 있으면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임을 몸소 체험했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다.
 
# 북치는 소리, 경 읽는 소리.
‘둥-둥 둥-- 둥-둥’ 밥을 먹고 밖으로 나가니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선암사를 병풍같이 둘러싼 산에 부딪혀서 그런지 북 소리가 묘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산새들은 입을 닫았고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소리의 진원지로 모여들었다. 정문의 역할을 했던 누각 위에 집체만한 커다란 북이 달려있었고 엄숙한 표정의 스님이 양쪽에서 북을 치고 있었다. 스님들이 북을 치고 있는 동안 산새도, 바람도, 외국인도, 그리고 나도 입을 다물고 북소리에 집중했다. 스님의 손에 잡힌 북채가 북과 만나 소리의 진동을 만들어 내듯. 소리의 진동은 피부를 타고 몸속으로 들어와 하나의 울림을 만들었다. 그 순간의 느낌은 공명(共鳴)이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북 소리가 끝이 나니 목탁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경을 외우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가 맑다는 생각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대웅전 앞으로 향했다. 내부에서 외국인 커플이 목탁소리에 맞추어 절을 하고 있었다. 엄숙한 표정으로 절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선 땀이 비가 오듯 흘러내렸다. 어떤 소망을 담아 절을 하기에 저리 엄숙한 표정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라면 어떤 소망을 빌었을까. 아마. ....이지 않을까 싶다. 절은 하지 않았지만 양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 선암사의 밤.
선암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잊지 못한다. 오전에 내린 가랑비가 만든 안개가 낮게 깔리며 그날 밤을 휘감았다. 구름에 가려 달빛 하나 없는 안개 속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며 풀벌레의 낮은 연주소리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모두들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서늘한 산바람을 맞으며 돗자리에 둘러앉아 웃음 짓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린 소녀마냥 작은 일에도 반응하여 큰 웃음을 터트리던 은유쌤과 은재누나. 풀벌레가 글 읽는 소리의 아름다움에 취해 연주를 잊어버렸다는 전설을 만든 별집사님. 노란 반딧불이가 산다는 맑은 눈을 가지신 세실쌤. 귀신이 나올까 무서워 같이 화장실을 갔던 준범쌤과 나. 손수 새콤달콤한 골뱅이를 무쳐주셨던 선미쌤. 시크한 도시남자 다울.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웃음이 한 장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 아침 산책
다음날 아침 홀로 선암사 주변 숲을 걸었다. 메일같이 콘크리트 정글을 걸어서 그런지 높고 길게 뻗은 나무들의 숲이 참 반갑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울퉁불퉁한 회색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 나무에 머리를 기댄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촉촉한 나무껍질의 촉감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가져온 촉촉한 산의 냄새에 취해 눈을 감는다. 숲 사이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산새 부부의 합창이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 문득 남해금산 뒤편에 쓰인 이름 없는 시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처음 당신을 알게 된 게 언제부터였던가요.” 생각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문장이 입을 떠나지 않는다.
 
# 떠나가며.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어 기억이 추억이 될 때 그 순간을 다시 본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빛바랜 앨범으로부터 사진을 꺼내보며 서글픈 미소를 짓는 내 얼굴이 보이는 건 왜일까. 그때 그 사람들과 다시 한 번 선암사로 돌아가 이슬비 내리는 밤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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