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4-16 08:21
빛과 소리로 마음을 씻어주는 선암사!
 글쓴이 : 곰솔
조회 : 1,061  


 

   선암사에서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오니 봄비가 내립니다. 북한산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남산의 탑도 희미해 오롯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날입니다. 잠시 일을 미루고 선암사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바라봅니다.

   선암사를 뒤로 하고 떠나온 마음이 할머니댁에 동생을 두고 온 것처럼 자꾸 아쉽고 그리워집니다. 팔순 어머니와 아버지 산소를 들르는 길에 꼭 다녀 가고팠던 선암사. 이번이 세 번째 템플스테이인데 올 때마다 봄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 처음 찾았던 때는 청매실이 익어갈 무렵이었고, 몸에 병을 치료하고 찾은 두 번째 방문은 오월 철쭉이 피어날 무렵, 그리고 세 번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매화가 막 진 무렵에 왔습니다. 선암사는 그 때마다 새로운 얼굴로 맞아주었습니다.

   템플스테이 시작 시간인 오후 네 시까지 시간이 좀 남아 절 옆으로 난 천년불심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템플스테이 담당 스님이 전화하셔서 잘 오고 계시죠?”하고 묻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좀 늦었다고 책망하기보다는 무사히 잘 오기를 바라는 듯해서 듣기 좋았습니다. 스님과 보살님이 여전히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고 전에 머물렀던 심검당에 방을 배정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자면서 계곡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가 한 자락 생겼습니다. 섬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하얀 고무신은 옹골찬 마음의 부유함을 말하는 듯합니다. 숙소 옆에 방비라고 쓰여진 글씨는 오랜만에 청소기 소리에 익숙해진 감성을 나지막하게 끌어내립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비와 싸리비를 잊고 살았는지 새삼 가늠해 봅니다.

  여장을 풀고 좀 쉬다가 자연의 재료로 지은 슴슴하고 맛깔스런 공양을 들고 저녁 예불 때 법고 소리를 듣고자 나갔습니다. 선암사의 법고 소리가 좋아서 가끔 그 느낌을 떠올리곤 했는데 역시 봄꽃이 날리는 저녁에 연푸른 잎이 하늘거리고 나뭇가지가 육신의 선을 드러내는 계절에 들으니 산천이 그 소리에 춤을 추는 듯했습니다. ‘이 산천의 잎들은 그래서 그렇게 보드랍고 쌕쌕한 빛을 지니고 있구나.’하고 생각하면서 낮에 본 현호색과 제비꽃이 햇볕에 자존심을 높이며 빛나던 이유를 짐작했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아무 것도 아닌 것들도 대단한 빛으로 환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또 제 자리에 온전히 있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구심력에 이끌리듯 이제 다시 제 자리를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찾은 템플스테이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길가의 돌멩이도 알맞은 크기와 모양으로 나지막한 돌담에 끼어 천년 고찰의 멋을 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선암사. 그 누구도 이곳에 오면 뭐 하라고 지시받거나 지적을 당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달라도, 서투른 발걸음으로 퉁퉁 소리를 내도, 퉁생이 맞은 어린애처럼 말없이 부어 있어도 눈살 찌푸리는 이 없는 편안한 절. 그래서 모든 사물이 제 자리로 잘 돌아가게끔 중심을 잡아주는 절. 그런 힘이 그리워 이곳에 오게 되는 듯합니다.

   조계산의 품 안에서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때로는 지나는 길손의 처진 어깨와 나란히 하며 걷고, 때로는 저 밑에 자리한 마을에서 들리는 어느 아낙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였을 선암사!

  이 절이 탄생한 통일신라 때부터 그러했으리라 믿습니다. 저녁 예불로 드리는 법고 소리에 강산은 포근히 깊은 숨을 들이쉬며 하루를 마감하고 순천만 너머의 바다생물들은 심해 속으로 헤엄쳤을 듯합니다. 법고 앞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산천의 온갖 소리가 잠잠해지는 순간을 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새벽에 어김없이 생명의 소리로 깨워 낼 그 힘은 새들도 다람쥐들도 힘껏 날고 달리게 합니다. 사람에게도 그러했으면 하는 마음에 또 새벽의 북소리를 기대합니다.

   저녁 일곱 시, 등명스님과의 차담시간이 되었습니다. 등명스님은 듣는 이가 무안하고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직격탄을 쏘기도 하시고 마음 구석에 모난 데를 두드려주는 말씀을 건네곤 하십니다. 아이에게 생선뼈를 발라주는 부모처럼 삶의 막히고 닫힌 부분들을 풀어내는 말씀으로 시원한 소나기를 맞은 듯 깨달음을 주십니다. 등명스님과의 차담은 듣는 사람에게 꼭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합니다. 상사와 동료들로부터 상처받은 여린 마음들, 속을 풀어낼 마땅한 대상이 없어 정처 없이 달려온 빈 마음들, 미처 돌보지 못한 육신의 아픔을 달래기 어려워 어두워진 마음들을 이런저런 쉬운 말로 다독여주십니다.

   등명스님과의 차담은 선암사를 찾는 이에게 신선한 말씀이고 그 차향과 함께 머무르는 시간은 각 사람들의 삶 속에서 꽃무늬를 지어낼 터이니 어쩐지 인생이 좀 수월해지고 숨통이 트이는 듯해서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런데 미욱한 성질 탓에 그 마음은 오래 가지 못하고 세상사 속에서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게 되니 다시 선암사를 찾게 되곤 합니다. 선암사가 늘 그 자리에 있어 다행입니다. 등명스님은 자기 삶의 그 자리에 있어야지 왜 이처럼 먼데까지 오느냐고 하시지만 어지간한 심덕으로는 제 자리에서 오래 똑바로 서지 못하고 되똑하니 흔들리는 게 보통 사람인 듯합니다.

    운수암 가는 길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에 대한 그리움, 선암매의 개화 소식에 템플스테이를 신청하고부터 미리 설레었지만 정작 등명스님의 말씀 속에서 삶의 발밑을 바라보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자는 뜻을 더 소중히 새깁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곧장 치고 나가는 삶을 이야기하시는 스님의 말씀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늪 속에서 헤매는 속인을 위로해주고도 남았습니다.

   여러 체험을 하지 않고 단순히 머물고 듣고 바라보며 쉬는 템플스테이였는데도 이번 방문은 제게 다순 온기를 선물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삶의 바탕을 손보는 의미를 만들고 찾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선암사의 템플스테이는 꽉 짜인 틀과 계획보다도 머무는 동안 빛과 소리와 향기에 온 마음이 세미하게 변화되는 귀한 체험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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